묵동(墨洞)이라는 이름은 [먹골]이라는 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묵동은 옛날 이곳에서 먹을 제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 에는 이곳에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기 때문에 송계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조선말까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해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 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 속했으나, 1963년1월1일(법률 제1172호) 상봉리, 중하리, 망우리, 신내리와 함께 동대문구에 편입되었습니다.
묵동은 봉화산을 끼고 있는 동중의 하나로써 서쪽으로는 중랑천에 연해 그 건너편에는 성북구 석관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묵동천을 경계로 노원구 공릉동과 인접해 있습니다. 또한 동쪽으로는 봉화산 능선을 따라 신내동과 구분되고 남쪽으로는 중화동이 있습니다.
신내동(新內洞)의 동명은 일제 때 봉화산 동쪽 아래 여러 개의 자연 부락 중에서 신현마을의 [신]자와 내곡마을의 [내]자를 각각 따서 신내리라고 정하 게 된 데서 기원됩니다.
신내리는 해방 후에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신내리로 있다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372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로 편입되면서 동명도 신내리에서 신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신내동의 동쪽은 구룡산 능선을 경계로 경기도 구리시와 인접되고 남쪽으로는 망우동과 경계로 합니다. 또한 서쪽으로는 봉화산 능선을 따라 상봉동, 묵동이 연접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노원구 공릉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신내 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많은 아파트 신축공사로 신흥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망우동(忘憂洞)의 동명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의 경계되는 곳에 망우고개가 있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망우고개라는 명칭은 조선 초부터 불리어져 왔으며,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으로 있다가 일제 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편입되었습니다. 편입된 후에도 동대문구 망우출장소에서 1968년 1월 1일(조례 제491호)까지 행정을 담당하였습니다.
망우동은 경기도 강원도 방면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망우리 고개와 공동묘지가 있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옛부터 수도방어의 요충지였습니다.
공동묘지와 고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도로확장 및 구획정리 사업 후 교통이 편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변모하였습니다.
망우동의 동쪽으로는 망우산(281M)의 능선을 경계로 경기도 구리시와 인접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면목동에 맞닿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상봉동과 경계를 짓고 북서쪽으로는 신내동과 접해 있습니다.
면목동(面牧洞)의 [면목]이라는 지명은 말목장 또는 목문의 소재지를 의미 하는 지명으로 마목 또는 목문·문목의 의미와 유사하고 또 목장을 앞에 두었다는 의미로도 통할 수 있어 면목으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면목동은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했고, 갑오개혁 때에는 남서 두모방 전관중, 하계 면목리동으로 되었습니다.
면목동의 위치는 동쪽으로는 용마봉 등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경기도 구리시와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중랑천을 경계로 동대문구 휘경동, 장안동과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광진구의 중곡동과 경계하며, 북쪽은 상봉동, 망우동 등과 연접하여 있습니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산록을 따라 높은 지대가 많고 서쪽으로는 중랑천 연안 등 저지대가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상봉동(上鳳洞)은 조선시대부터 유래하는 상리, 봉황동 등의 자연부락을 통합하여 상리의 [상]자와 봉황동 등의 [봉]자를 따서 상봉리라고 붙인데서 연유하고 중화동, 묵동, 신내동과 같이 봉화산을 끼고 있으며 대한제국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해 있었습니다.
1963년 1월 1일(법률 제1172호)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다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지역은 중앙선 철도와 망우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동2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교통의 요지입니다.
상봉동의 동쪽은 망우동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면목동과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중랑천에 연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중화동, 묵동, 신내동과 접경해 있습니다. 또한 동의 지형이 망우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 상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동북부 서울의 관문인 상봉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화동(中和洞)의 동명은 옛 부터 봉화산 아래 자연부락인 가운데 마을(중리)과 아랫마을(하리)의 글자를 따서 중하리로 칭하였는데 1963년에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당시 동민들의 의견이 [하]자 대신 화목을 도모하는 의미 로 [화]자를 넣어 중화동으로 개칭할 것을 서울특별시에 건의하였기 때문에 중화동으로 되었습니다.
이곳의 공식적인 지명은 일제 침략 초까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중리, 하리 일부 지역 이였으나, 1914년 4월 1일 일제의 면,리, 동 통폐합 시 양주군 구리면 중하리로 칭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이 지명은 변함이 없었으나, 1963년 1월 1일(법률 제1172호)서울특별시의 확장으로 동대문구에 편입하고 동명도 중화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중화동은 봉화산 산기슭에 중랑천을 끼고 있으며 동1로가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중앙선과 망우로가 동서로 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봉화산 능선을 끼고 상봉동과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망우로를 경계로 상봉동과 나누어지며 북쪽으로는 묵동과 접하고 있습니다.